이야기 l 인더하우스 (Dans la maison) "주말 지난 얘기" (BGM有)


영화 '인더하우스 (Dans la maison)' 스포 有 

(영화 보실 분들은 보지마세요)


"주말 지난 얘기"
제출자 : 클로드 가르시아



"학교 생활은 어때?"

"조용하고, 얌전하고 항상 뒷줄에 앉아"

"당신도 늘 그랬잖아"
"명당자리지 숨어서 볼 건 다 보고"


- 1화


토요일에 라파 아틀 집에 갔다. 라파 집에 가고 싶은건 한참 됐다. 여름 내내 공원에서 그 집을 훔쳐봤는데 한번은 걔 엄마한테 들킬 뻔 했다. 라파 수학점수 바닥인걸 십분 이용. 수학공부 도와준다고 따라갔다. 물론 핑계였다. 걔네 집에 가볼 절호의 기회 아닌가 라파가 우리 동네 오진 않을 테니. 


아직 11시 벨을 눌렀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라파의 방은 상상한 그대로였다. 삼각함수 문제를 풀게 해놓고 콜라 마시겠다고 나와 곳곳을 염탐했다. 드디어 여기 들어오다니 이 흥분된 순간을 얼마나 꿈꿨던가.


생각보다 집이 커서 우리 집 4배는 된다. 깔끔하게 정리도 잘 돼있다. 오늘은 이 정도만 보려고 라파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내 발길을 당기는건 처음 맡아보는 매혹적인 향수 내음. 향기 나는 곳으로 가보니 누가 소파에 앉아서 인테리어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이 집 안주인 라파의 어머니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든다. 눈동자 색이 소파 색과 같다.


- 내가 찰리니?
'달콤한 저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거지?'
- 전 클로드에요
숨죽이며 대답했다
- 화장실 찾니?
- 주방이요 
날 주방으로 데려가서 "얼음 줄까", "편하게 마시렴"
그녀는 소파로 돌아가 다시 잡지를 폈고 난 라파의 삼각함수 문제를 풀어줬다

- 낙제 면하려면 죽도록 공부해야겠다


(다음 시간에 계속)



과제. 다음 형용사로 문장을 만들것.

        '사랑스러운', '다른', '평범한', '좋은', '집중적인', '작은', '완벽한'




이걸 다요?
짧은 것 없어요
"재미없으면 돌려주면 되지"
재미없으면 돌려주세요


- 2화


안녕, 라파 월요일에 라파에게 제안해서 삼각함수 공부를 더하자고 했더니 '사랑스럽게도' 당장 가자고 한다. 

" - 오늘 오후에 올래 "

왜 라파일까? 왜 친해지고 싶었지? 사랑스럽다고? 어찌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평범한 애들은 많지만 라파를 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작년에 걔네 부모님이 가끔 학교에 왔다. 팔짱 낀 모습으로 다 큰 아들 데리러 부모님 오다니 보통 남자애들은 난감할 텐데 근데 라파는 좋아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완벽한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가면서 평범한 남자들 대화를 했다. 여자 얘기 스포츠, 농구, 자동차, 진로 문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더니 어느새 집이다


집에 들어갔을 때 라파 엄마는 창문 크기를 재고 있었다. 우리 온 것도 모른 채 일에 빠져있다. TV 위에는 중국 용 조각과 완벽한 가족 사진. 근데 굶주린 용이 이들을 노려본다.


- 친구 왔구나 

- 클로드에요 

- 클로드 

- 안녕하세요?

- 공부 잘했어?

- 수학 B에요

잊지 않고 한 마디 "클로드 덕이에요" '"정말 잘했구나" "간식 줄까?"

- 빵 있는데

- 좋아요

- 초콜릿도 있다. 맛있게 먹어라


그녀는 잡지와 자를 들고 하던 일을 마저 하러 간다. 하늘거리는 발걸음. 이 연인은 발걸음에도 격조가 묻어나는군 


(다음 시간에 계속)




"왜 현재 시제이지? 왜 바꾼거야?"

그래야 늘 그 집에 있는 느낌이 나요


- 3화


행복한 그 집으로 돌아가 내 좋은 친구 라파를 도와준다. 얘 수학은 정말 꽝이다. 

"뭐라고?"

"이건 무한소수야 유리수랑 다르다고"


(라파 아빠 등장)

"우린 한 팀, 알지? 살 때도 같이 죽을 때도 같이 공동운명체!  골은 혼자 넣지만 패스는 다 같이"

"그리즐리 vs 클리퍼스 경기 볼래?"

- 피자 어때?

- 좋아요

치즈 듬뿍, 치킨 윙도!

- 같이 보자, 찰즈?

- 클로드에요

"샤워하고 좀 있다 보자"

"나중에 봐요'

쫄바지 입은 아저씨랑 놀아주기로 했다. 

"너의 아빠 재밌다"

"멋지셔"


라파가 X값 구하느라 고생하는 동안 이 아저씨가 샤워하는 걸 상상한다. 이 집의 가장 라파의 아빠다. 한 시간 뒤 그의 모습은 눈부시다. 옷 갈아입으니 완전 딴 사람인데 TV 리모컨을 장악한걸 보니 이 집 가장인건 확실하군

"저 한국애 뭐냐? 저러니 중국에서 싫어하지"

클리퍼스 팀엔 한국 선수가 있는데 중국 광팬인 그에게 눈엣가시 같다.

"저게 말이 돼? 중국은 어른 모실 줄 아는 나라지. 한국은 절대 못 쫒아와"

10년 전 1주일 가놓고 중국전문가를 자처한다. 

"미치겠군!"

15분 경과. 그리즐리, 밀어붙이다가 파울 받는다. 라파 아버지 직장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 모리스, 안 반갑다. 중국인 동업자 윙리를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늦은 밤 호출에 부인이 짜증낸다. 손님 맞으려고 옷 갈아입는 순간 클리퍼스 반격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독자가 누구인지 정해야 돼. 이 글은 누가 볼 거지? 주인공들 단점을 막 보여주면 독자는 그걸 비웃으며 우월감을 느껴 가까이 지켜보되 편견은 갖지말고 그게 정말 어렵지. 플로베르처럼 인물을 냉정하게 봐야 해


버전 2, 다시 그 집이다. 라파의 공부방부터 시작한다. 

(노크소리) 녹색 운동복 입은 라파 아빠 우리한테 농구 게임 보라고 한다. 2분 2쿼터, 3점 슛이 터지자 두 남자는 광분한다.

- 죽인다

- 게임 재밌지 ?

3분 경과, 엄마가 합류하지만 게임에는 흥미가 없다. 7분, 그녀는 '아름다운 집' 215호를 펴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보며 감탄한다. 8분, 라파 아빠는 벽걸이 TV 사고 싶단다. "플라즈마 스크린으로 보면 죽이겠는 걸"

10분 경과, 에스더는 리모델링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항상 이 집에 머무는데 이 집 디자인이 영 맘에 안 든다. 12분, 그녀는 허공을 물끄러미 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 욕실 하나 더 만들까?' 15분 경과, 그리즐리 선수 5반칙 퇴장. 하지만 최다 점수 낸 그 선수에게 기립 박수. 전화벨 소리. 시간을 본 아빠는 받기 싫어한다. 

"여보세요. 모리스? 괜찮습니다 뭘 할까요? 메모 좀 할게요. 밤 10시 15분 2번 터미널. 플랜카드요? 네, 이름 쓰는 거죠? 윙리? 윙에는 'o'가 있고? 컨벤션 호텔. 걱정 말고 쉬십시오. 알겠습니다"


라파 아빠는 옷을 갈아입고 공항으로 떠나고 클리퍼스 팀 반격. 우아하고 품위 있는 그녀가 다가오지만 솔직히 농구는 모른다


- 누가 이기고 있니?

- 클리퍼스

"근데 싫어?", "우린 그리즐리 팬이잖아요.", "클리퍼스 응원하는 줄 알았지.", "엄마!"


(다음 시간에 계속)



"다음 편 글은 왜 안주니?"

그 집에 못가면 쓸 수가 없어서요


- 4화


라파한테 문제 3개를 풀게 한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혼자 못 풀 문제를 준다. 라파가 답 구하느라 끙끙 될 때 난 집 탐사에 다시 들어간다. 

"윙리가 취해서 한바탕 했어. 자길 뭐로 보냐며 펄펄 뛰더군. 수익의 15%는 달라고 난리였지. 그 말 듣고 생각났어. 나도 내 사업을 해보자"

"당신 직장 좋다고 다들 부러워 해"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있다고 아이디어는 내가 내고 돈은 사장이 쓸어가"

"당신 팀워크 체질이라며"

"하지만 진정한 팀에서는 패스한 사람도 기쁨을 함께하지. 윙리는 바비인형 얘길 했어. 재료비 3유로면 10배에 팔 수 있대. 우린 공정만 보내고 만드는 건 그 쪽 공장. 사진만 보내도 만들 수 있어. 물론 초기투자가 필요한거야. 저축한 돈에 융자 좀 받고

"집수리는 어쩌고. 테라스를 카페처럼 만들기로 했잖아"

"나 뭔가 시작할 나이야. 하나는 포기해야지. 모리스를 봐 나라고 안 되겠어? 당신이 도와줘. 상품 선정, 고객관리 당신이 잘하잖아!"

"나 보고 같이 하자고?"

"우리 같이 해보자"

"라파도 다 커서 난 인테리어 일 하고 싶어?"

"하지만 이건 우리 사업이야! 잘만 되면 집수리 까짓 것 아무것도 아냐!"

"당신 때문에 못 살아"


"뭐 하는 거니?"

"라파 수학공부 도와주고 있었어요"

"마무리 해라 너무 늦었다"

내가 엿봤을 거라고 의심했을까? 폴 클리 그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라파가 다음 수학시험 걱정해. 과외선생 구해야겠어"

"친구 말고 진짜 선생 말이야. 친구끼린 도움 안돼"

"라파는 그 친구 좋아하던데"

"근데 난 좀 별로야. 뚫어지게 그림 보는 것도 이상했고, 너무 자주 오는거 같아. 그만 오게 해야겠어"


(다음 시간에 계속)



클로드는 에스더를 강렬히 원하지만 장애물이 있어요. 라파 부자가 큰 걸림돌인데 이걸 어떻게 넘어설지가 관건이죠

"에스더를 모텔에서 만나는 건가?"
아뇨, 집에서요. 모든 사건의 배경은 집이죠


- 5


A? 수학이 A! 봐, 하니깐 되잖아

- 클로드, 넌?

- B+요

"그것도 잘했네"

라파 도와준게 성공적이였고 곧 이 팀에 합류할 것 같다. 에스더! 손을 닦으면서 그녀가 나온다.

- 잘했구나!

- 고마워요, 엄마

'에스더.. 에스더..'

"도와줘서 고맙다, 클로드"

"클로드, 우리랑 농구하자 토요일 6~8시에 하거든 너도 좋아할거야" 

"농구는 못해서"

"신나게 노는 거야!, 경기 끝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 얼마나! 재밌다고

- 부담 없이 해봐

"시간이 안 될거 같아"

토요일엔 일이 있다. 라파가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단짝친구 전선에 이상이 생겼다.

"중간 C, 기말 A 그럼 평균 B잖아. 장하다, 아들"

- 내일 봐

- 그래

"애들이 숙덕거려. 너랑 제르망 선생님이 좀 이상하대. 둘이 뭐하는 거야?"

"선생님이 글쓰기 도와줘"

"수학 시험지도 줬어?"

"무슨 소리야?"

"이상한 사람이야. 부인이 성인용품점 한대"


토요일 오후 5시 반 지난 여름에 앉았던 그 벤치 근처다. 방해꾼들 사라짐! 이 집 벨소리는 정말 듣기 싫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온다. 에스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게 사는 여인. 

" 라파는 아빠랑 농구하러 갔는데, 전화라도 해줄까?"

" 아뇨, 제 수학책 가지러 왔어요."

" 들어와, 찾아보자"

드디어 그녀와 단 둘이 이 집에 있게 있게 됐다.

" 이상하다, 못 찾겠다"

당연하지, 책은 우리 집에 모셔놨거든

"우리 엄마도 그런 귀걸이 있었는데" 

귀걸이 얘기로 슬슬 시작한다

" 9살 때 엄마가 떠나셨는데 아빠가 싫었나봐요. 내 탓인 거 같기도 하고"

작전 대성공. 엄마 얘기는 동정심 자극에 최고다

- 마실 거 줄까?

- 좋아요

순식간에 유대감 형성

"콜라?"

드디어 유대감이 형성된다. 라파, 농구, 수학공부 얘기까지 주절주절. 

"라파 키우느라 공부 관뒀는데 이젠 다 컸으니 건축공부하려고 디자인 쪽에서 일하고 싶어"

여자도 나와 단둘이 있는 게 달콤한 듯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토요일엔 더 오래 있어야지

"커튼, 벽지, 그림 다 관심 있어"

- 클리 그림 봤니?

- 네

- 맘에 드니?

- 그럼요

"가서 보자"

'구원', '방해', '희망' 

" 천사가 무섭네요"

"저게 천사 였단 말이야!"

이 집 남자들처럼 그녀도 독일어를 모르니 이런 그림도 장식일 뿐이다. 실내 장식하면 다 바꾸겠지.

"레퉁은 구원이란 의미, 운터브레훙은 방해란 의미 호프농은 희망, 제스트뢰붕은 파괴"

두 남자 오기 전에 가야겠다. 돌만 있다가 들키면 안되지. 에스더는 한 남자의 부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잖아!


(다음 이 시간에 계속)



"우리 교복 어때요?"
"웃겨요, 양떼 같네요"
"그럼 클로드 가르시아는 시커먼 양? 잃어버린 양?"


- 6화


라파에게 어려운 문제 4개를 풀게 하고 부모님 없는 틈을 타 작전개시. 집을 더 돌아봐야겠다. 이번엔 부부침실. 그녀 특유의 체취가 침실에 그윽하다. 스크린 세이버는 중국인 남자 웃는 얼굴. '비안잔 인형 사업', '전진 보석 사업', '재산 서류', 출장 가서 보낸 엽서들 이건 뭐지? X-레이잖아. 척추 사진이다. 이 X-레이는 그 여자인 게 분명해. 벽장엔 여자 신발이 7켤레. 그녀가 빨간 구두 신고 산책하는 걸 상상한다. 여긴 욕실이다 라파 아빠 향수를 뿌려본다. '오 소바주'향수! 면도기, 세이빙 크림, 소염제, 신경안정제. 

"나야"

"오늘 잘 지냈어?"

"중국 놈 때문이 미치겠어. 계약 안 한다고 서류 던지고 갔어. 게다가 사장은 접대영수증 보더니 비싼 거 먹였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언젠 무조건 잘해주라며!"

"얼마였는데?"

- 268유로

- 그럼 당신이 내

"돈 문제가 아냐 계약이 깨졌잖아. 재계약만 되면 그깟 돈이 문제겠어?"

"그럼 어떻게 해?"

"눈치껏 기어야지. 계약문제, 300유로 언젠가 잊겠지"

"팁 포함!"


(다음 시간에 계속)



은근 즐기는 사람도 있지. 몰래보면 짜릿하니깐


- 7화


라파 수학 최고점수 기념 식사까지 초대받았다. 당연히 중국 음식이다.

"만리장성 갔을 때 고기가 나왔는데 쇠고기인지 생선인지 영 모르겠더군."

- 뭐였는지 알아?

- 뭔데요?

'오리 발 요리"

문학 선생님이 카프카 소설 '만리장성'을 빌려줬어요. 

"라파 말로는 그 선생님이 이상하다던데"

"교사보다 작가가 맞는 분이죠"

"그 두 개가 뭐 달라?"

"재능이 없어서 분노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는 담배 피우러 나간다. 지난여름엔 멀리서 이 테라스를 봤는데 이젠 내가 그 자리에 라파 아빠와 함께 나왔다.

"클로드, 사람들은 중국을 두려워 해"

"앞으로 중국이 대세거든. 일단 인간이 많고"

아들과 하는 얘기는 스포츠, 자동차, 농구 나랑은 다르다.

"인구가 10억 넘는데 1년에 6백만씩 늘어나. 전엔 1자녀정책이 있었는데 지금은 생기면 다 낳지"

비둘기한테 먹이 주는 노숙자가 보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면 나를 누구로 볼까? 이 집 아들이지.

"정말 좋은 친구구나!"


토요일 에스더와 둘만의 시간 포기. 라파 부자한테 가기로 했다. 짧은 바지를 입고 공을 쫓아다닌다. 한참이나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랑 우리 아버지 모습과 비교해본다. 저렇게 공 튀기며 놀 수 있을까? 아니,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아빠와 나한테는 없는거다. 그런데 이들은 다르다 토요일마다 라파와 아빠는 공이 들어가면 환호하고 실패하면 실망한다. 

"라파, 친구 왔다!"

"드디어 와줬구나!"

- 멋진 걸!

- 너도 농구했구나!

그의 눈을 또렷이 보면서 말했다.

"엄마가 떠난 날 아빠가 농구를 권뒀어. 그때 나도 관뒀지"

"클로드, 우리 팀이야"



"나 말고, 네가 좋아하는걸 찾아봐"


- 8화


"집에 안 갔니? 늦었다"

"수학 문제가 어려워서"

"클로드, 자고 갈래?"

"그럴게요"

"집에 전화 드릴래?"

"괜찮아요"

늦게까지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드디어 이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됐다. 

"크리스마스 때 이모가 주무시는 방이야"

이 방에 들어오니 기분이 묘하다. 이들의 사생활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다.

"엄마는 어릴 때 장난감 버릴 수가 없대"

팔다리, 머리가 없고 눈도 없는 인형들. 에스더 인형은 멀쩡한 것이 없다. 불쌍한 것들!

- 이거 입고 잘래?

- 그래

"그 글 써준 거 고마워. 네 덕에 살았어"

"그 쯤이야 뭘"

잠옷 대신 입으라고 자기 옷을 줬다. 나한테 너무 커서 라파가 웃는다.

"넌 진짜 내 친구야"

(기습 뽀뽀)

"내 마음 알기나 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온 몸이 불타올라 미치겠어!"


라파는 자기 방으로 갔고 난 잠이 안 온다. 야릇한 느낌이 들면서 궁금해진다. 폭풍우가 불면 애들은 다 악몽을 꾸나?

눈감고 복도를 걸으며 어둠에 익숙해진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방에 들어간다. 라파는 곤히 잠들었는데 가끔 뒤척인다. 움직이는게 귀엽네. 무슨 꿈을 꾸는걸까? 꿈에서 누굴 만났나?


그녀가 웃고 있다. 피부는 뽀얗고 발은 아이처럼 작다. 어둠 속에서 잠든 부부를 보며 방금 전 그들 모습을 상상한다. 허겁지겁 사랑을 나눴겠지. 남자 머리엔 회사와 중국 생각뿐. 에스더는 허공을 쳐다보며 오래 전 바스라진 욕망을 있는 척 한다. 우리 엄마도 저러다 떠난 거야. 나와 아빠를 버린 거지 행복한 척 그만하고 제대로 살려고


야릇한 느낌이 들면서 궁금해진다. 폭풍우가 불면 애들은 늘 이렇게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는 꿈을 꿀까?


(다음 시간에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요. 난 키스하고 싶어


- 9화


우리 둘은 공원을 바라본다. 그녀는 사과 한입 물고 하늘을 본다.

"날씨 정말 좋네. 중국 예술가 생각나네. 그 사람 작품 단순하면서 아름다워. 그늘 사이로 들어나는 하늘"

공원모습은 늘 변하는 것 같다. 오래전 토요일 오후 엄마는 나한테 그네를 태워주셨지. 지금은 이렇게 약이나 사고팔고 양로원 놀이터가 됐다.

"저 벤치 보이지? 지난여름에 너 자주 온 거 알아. 이 공원 좋아하잖아"

"근처에 집에 많아서 좋아요. 벤치에 앉아서 쭉 돌아도면 진짜 구경거리 투성이죠."

"이 집 처음보고 푹 빠졌어. 도시면서, 자연에 둘러싸인 게 멋지잖아. 하늘과 공원"


에스더는 피부가 어찌나 뽀얀지 사과처럼 달콤할 것 같다.

- 괜찮으세요?

- 허리가 좀

"수술 받았는데 가끔 이래. 예전엔 라파랑 조깅도 했었는데 지금은 못해 춤도 못 추고"

석양빛을 받으며 춤추는 그녀를 상상한다. 맨발로, 노란 낙엽 위를 미끄러진다.


"윙리를 접대하는 날 윙리가 술집에서 완전히 맛이 가서 어떤 아가씨를 심하게 희롱했어. 난 목숨 걸고 이 인간을 구해냈지. 근데 내가 자길 무시했다잖아!"

"거기 전에도 갔었어?"

"아니. 거래처 취향이지. 누군 박물관 누군 축구장 누군 짐승이라고!"

"그 짐승하고 놀았단 거네!"

"그냥 여자 나오는 술집이야!"

"여자 나오는 술집? 말 다 했다"

"난 원래 그런 술집 근처에도 안 가. 사장이야 늘 드나드지. 이번엔 할 수 없이 일 때문에 간거라고"

"어쩔 수 없이 가셨다? 여자들과 술도 안 마시고, 춤도 안 췄어?"

"그래, 딱 두 잔 마셨다!"

"이젠 당신 못 믿어"

"여보"

"손대지 마! 더러워"

"지겨워, 못 해먹겠다. 그렇게도 못 믿어?"

드디어 내게 기회가 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두려워진다. 

"받으세요"


"어젯밤에 한 숨도 못잤어. '비는 춤추지 않으리'가 무슨 의미지?"

"느낀 대로 받아들여요. 당신 마음이죠."

"우리 집 남자들 모두 너를 많이 좋아하지만 이 시를 보면 충격받을 거야. '맨발로, 노란 낙엽 위를 미끄러진다'"

"당신을 위해 쓴 시라고요"

"나머지는 알겠는데 비 얘기는 이해를 못하겠어 '낙엽 위를 미끄러진다 비는 춤추지 않으리'"

"비는 춤추지 않으리"

(클로드와 에스더 키스한다)

(라파가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다음 시간에 계속)



네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냐

환상일 뿐야

네가 만들어낸 내 모습


- 10화


지는 해의 석양빛이 여자의 다리와 목을 애무한다. 에스더..에스더..지루한 삶에 지친 여자가 잠들어 있다.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지켜보며 쌔근대는 숨소리에 매료된다. 다시 이 여자에 깊은 욕망을 느낀다


"무슨 일이야?"

"사장이 윙리 접대비 갖고 또 난리야. 날 개무시하더군. 사람취급도 안 해!"

"그랬구나"

- 에스더

- 응?

"그 놈 차에 불 질렀어"

"누구 차?"

"사장"

- 왜?

- 나도 몰라

"그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았어. 이 회사가 내 목을 졸라!"

"누가 봤어?"

"나도 몰라"

"당신 무슨 말 하려는 지 알아.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줘"

"나도 할 얘기가 있어"

"뭔데?"

"임신했어"

"잘됐다! 왜 진작 말 안 했어?"

"당신이 좋아할지 몰라서"

"사랑해"

"라파? 뭔 일 있니?"

"부탁이 있어요."

"뭔데?"

"수학선생님 구해주세요"

"클로드는?"

"그 자식 안봐요"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며 이 가족은 모든 상처에서 회복됐다.

"이리오렴"

이 집에 들어오는 걸 1년이나 꿈궜고 결국 들어왔다. 완벽한 가족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이들의 일부가 될 것만 같았다. 근데 이 집에 내 자리는 없다. 


(다음 시간에 계속)


옵션 D. 에스다 말한다. 비는 춤추지 않으리
애정 없는 남편과 아들 그녀에겐 모두 지옥이다. 삶은 의미없이 숨이 막힌다. 여자가 집을 뛰쳐가가니 그가 공원벤치에서 기다린다. 남자에게 달려간다. 함께있다. 키스한다



성공적 엔딩은 이런 느낌을 줘야 돼 '의외의 결론이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


- 엔딩


오늘은 특별한 날이지만 보통처럼 6시 45분에 일어나 아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언제나처럼 8시에 집을 나선다. 수요일이니 1교시 영어 2교시 역사 3교시 문학 그리고 수학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가는 곳은 학교도, 라파네 집도 아니다. 얘길 마무리해야지. 제르망도 끝나고 내 선생님도 끝이다.


지친 그녀를 만나러 왔다. 그녀 남편에 대해서라면 난 꽤 많이 안다. 자기 부인 예술을 쓰레기 취급 하는 사람. 


- 네가 클로드구나?

- 맞아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생각과 다른가?

"수업 없니"

"학교 관두려구요"

"뭐 하려고"

"수학 어렵다고 난리들인데 과외선생으로 일하면 돼요."

- 정말?

- 그럼요

" 예술품 카탈로그 글도 써주고 선생님이 나보고 잘 쓴댔어요"

"하긴 너 상상력 풍부하더라"

"들어가도 돼요?"

"제르망은 없어"

"알아요"

드디어 그의 집 안에 들어왔다.

"여행 가려고?"

" 책 돌려드리려고요 갤러리는 문 닫아서"

책을 꺼내서 책꽂이에 꽂았다. 

"톨스토이. 러시아 사람 싫어. 안나 카레리나 첫 장과 마지막만 읽었어"

갑자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는데 내가 책을 집자 그녀가 웃는다. '폭풍 속의 아이'

"남편이 20년 전에 썼어. 말 안하든?"

"아뇨, 어떤 얘기인데요?"

"뻔한 사랑 얘기.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본인도 알아."

"슬프네요"

"제르망은 머리가 나빠. 넌 그이 닮았는데 재능은 있어 보인다"

에스더와는 다르지만 욕망이 솟아난다.

"그 책은 가져라"

여자가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갤러리, 수학 얘기도 했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집 얘기가 튀어나왔다.

"에스더는 절대 라파를 떠나지 않아. 힘들지만 회복할 거야. 끈끈한 뭔가 있거든"

"맞아요. 서로 사랑해서 둘째도 낳는대요"

"그건 몰랐구나"

"왜 아이를 갖지 않았어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각자 일에 바쁘고. 그런데 어떻게 그이와 가까워진거니? 그이가 아들을 원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

"아들을 원했대요. 선생님 말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건 당신 때문이라고"

"그이가 그러든?"

"네"

(전화 벨소리)

"아뇨, 누구세요. 알았어요."

"제르망 해고됐대"

"왜요?"

"라파가 시험지 사건 다 말했어"


제르망을 처음 만난 순간 어떻게 사는지 정말 궁금했다. 어떤 집에 사는지 부인은 어떤지 뭐를 하는지 아이들은 있는지 아직도 서로 사랑하는지. 

제르망 부인이 내 앞에 잠들어 있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린다. 스커트가 올라가자 뽀얀 피부가 드러나고 발 에쁜건 에스더랑 비슷하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거지? 선생님 부인이 잠든걸보니 교실 뒷줄에만 앉아있던 제자의 욕정이 타오른다. 내 소설의 엔딩을 찾던 중이였는데 얘기는 이 집에서 마무리될 것 같다



- 에필로그

여기서 보니 창문이 가지각색이네요. 멀리서 라파네 집을 지켜볼 때 객석에 앉은 기분이였어요. 늘 궁금했죠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저기봐요. 두 사람이 왜 그럴까요? 누군지 알아요?"

"아니. 싸우는 거 같구나. 둘이 자매 같아. 유산 놓고 싸우는거야"

"레즈비언 커플이 헤어지는 거에요"

"상속받은 집 놓고 싸우는 거야. 한 명은 팔겠다. 한 명은 안 된다."

"금발머리가 배신하면서 깨진 거죠 갈색머리 말씀. '그 여자는 내 거야! ' 여자 손을 봐요 '내가 먼저 찜했다니까' '어쩐지, 너 이런 인간이었어?' "

" '죽으면 죽었지 이 집 못 팔아' '아빠가 이 집을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

"쌍둥이로 갈까요?"

"아니"

"1층 오른쪽 집"

"그만해라. 수학선생 필요한 집은 아니다"

"구실이야 많아요. 어떤 집이든 틈이 있기 마련 방법만 찾으면 간단하죠. 나 좀 도와줄래요?"


제르망 선생님은 다 잃었다. 부인, 직장. 하지만 그에 곁에 남은 나는 다음 얘기를 시작한다.


(다음 시간에 계속)